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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를 사랑한다

오랜만에 필름 스캔을 했다.
두 롤을 현상소에 맡겼고, 여느때와 같이 “현상만 해주시구요, 6컷씩 잘라주세요.” 라고 말했고, 현상소 주인언니는 영수증에 “투명비닐”이라고 적어주었다.

filmcamera사실은 다음 날 찾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언제 찾으러 오면 되냐는 물음에 시계를 힐끗 보더니, 8시 50분 쯤 오세요-라고 하셔서, 알겠다고 하고 문을 나섰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시계를 보니 8시 50분! 어렴풋한 기억에 분명히 9시에 문을 닫는 것 같았는데- 얼른 옷을 챙겨입고 현상소로 뛰어갔다. 헐레벌떡 현상소문을 열고 뛰어 들어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주인 아저씨가 자물쇠를 손에 들고선 웃더라.
같이 한번 웃어주고 현상한 필름을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디카로 찍었을 때와 달리, 6컷씩 잘린 필름 한줄 한줄씩 필름 스캐너에 넣고 preview와 scan을 오가며 아주 귀찮게 필름 스캔을 한다.
디카로 찍었을 때는 USB선을 연결하고 파일들을 drag하고 디렉토리명만 정해주면 끝인데, 필름 스캔을 하면 귀찮은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아저씨가 넣어준 비닐 커버에서 나의 필름 케이스에 맞는 커버로 옮겨야하고, 필름 한롤이면 6컷씩 6번이나 필름 스캔을 해야하고, 필름 커버에 이 필름에 담긴 사진에 대한 정보도 적어주어야 하고, 스캔한 사진에선 스캔하면서 들어간 먼지나 필름 자체에 스크래치가 생긴 것들을 보정해 주어야 한다.

필름 애지중지 하면서 관리하는 편이 아니라서, 필름 자체에 스크래치도 꽤 많이 생긴다.
사진 찍는 사람이 필름을 소중히 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난 기본적인 안전(?)만 생각하고, 사소한 것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진정 좋아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아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의 한도 안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름도 어딘가에 비벼버린다던가, 아무곳에나 방치한다던가, 손으로 띡 잡아서 지문을 만들어버린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라면 잡을 때도 그다지 신경 써서 잡지 않고, 필름 커버에 넣을 때도 잘 들어간다면 신경 쓰지 않고 쓱 집어 넣는다.

내가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디카로 찍은 사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야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디카보다 더 정교한 것이 필름이지만, 인화물이나 필름 스캔물에서는 디카보다 훨씬 포근하다.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필카로 찍은 사진에서는 찍은 사람의 애정이 좀 더 묻어나 보이는 것 같다. 내가 사진을 너무 감정적으로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왜 뜬금없이 필름 카메라 이야기를 하는가.
지금, 지난 여름이후로 몇 달만에 필름 스캔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다.
스캐너에 한 줄씩 한 줄씩 넣어가면서, 찍었던 사진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이 사진을 찍은 그 당시에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찍었는지에 대해 한번씩 더 떠올리면서 멀지는 않지만 지난 시간에 대해 또 다시 생각해 보게 해주고, 좀 더 감정적인 추억을 떠올린다.

별로 좋지는 않은 필름 스캐너 덕분에 약간 뿌연 스캔물들을 보면, 나의 지난 시간들도 안개 속에서 뽀얗게 뽀샤시 하게 떠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필름은 추억을 좀 더 미화시켜 주는 것 같다.